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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1-28 (월) 18:31

 

“조상의 노고 지폐에 담긴다” 청도 김정호 후손들 환호성
韓銀 10만원 고액권 발행 확정…뒷면에 김정호 대동여지도 채택  
대동여지도, 근대 견주어도 손색없는 정밀한 지도로 조선시대에 제작
조선어독본 역사기록 일제 조작으로 밝혀져…정부,교과서 내용 개편

 
 
 
 
 
 
 
 
 
 
 
 
김정호 대동여지도(위), 고액권 화폐 추정도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10만원권 및 5만원권을 2009년 상반기에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973년 1만원권이 발행된 이후 물가, 소득 등 경제여건이 크게 변화하면서 국민들이 상거래 때 부피가 많은 현금을 대신해 자기앞수표를 발행해 사용하는 것이 늘어나 국민의 불편과 사회적 비용 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5월2일 고액권 발행계획을 발표한 후, 14차례의 화폐도안자문위원회 회의 및 국민여론을 수렴해 정부승인을 받아 고액권 도안을 최종 확정했다.
 새로 발행될 고액권의 규격은 `5만원권(가로154㎜ x 세로68㎜)’, `10만원권(160㎜ x 세로68㎜)’으로 정해 기존 1만원권(148㎜ x 68㎜)과 세로길이는 동일하나 가로길이를 10만 원권의 경우 1만 원권보다 12㎜, 5만 원권 6㎜ 각각 확대하기로 했다.
 기본 색상은 `현행 1만원권 녹색, 5천원권 적황색, 1000원권 청색’을 주 색상으로 사용하고 있어 고액권 또한 액면 구별이 용이하도록 “5만원권은 황색, 10만원권 회색을 주색”으로 해 보색 계열의 색상을 부분적으로 적용, 고액권에 걸맞게 중후한 느낌이 들도록 명도 등을 조정하기로 했다.
 도안 소재로는 `5만 원권 앞면 신사임당과 묵 포도도(전 신사임당 작, 간송미술관 소장), 뒷면 월매도(어몽룡 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10만원권 앞면 백범 김구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사진, 무궁화, 뒷면 김정호 의 대동여지도 목판본(보물 제850호, 성신여대박물관 소장)을 기본으로 한 필사본과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채택, 스위스, 이스라엘, 브라질 등과 같이 세로방향으로 디자인해 현용 은행권과 차별화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한국은행은 고액권임을 감안해 첨단 위조방지 장치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위조방지를 위해 발행될 고액권의 도안 및 위조방지 장치 등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국조폐공사에서 시제품이 완성되면 발행일자와 함께 발표한다고 밝혔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
 이번 10만 원권 화폐에 채택된 대동여지도(보물 제 850호)를 집적 제작한 김정호(1804~1866년)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로서 청도김씨 봉산파이며 자는 백원(伯元), 백온(伯溫), 백지(百之),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서울 남대문 밖 만리재 인근과 공덕리에 살았던 고산자 김정호는 지도 제작자가 아니라 국토에 애착을 갖고 평생을 바쳐 국토를 연구한 지리학자였다.
 철종 12년(1861)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22첩으로 구성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의 전국지도인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120리 간격으로 구분해 22층으로,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축척 약 16만분의 1로, 각 층마다 20.1cm 크기로 8폭으로 접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지도 첫머리인 제1층에는 좌표와 지도표(地圖標), 지도유설(地圖類說), 서울 도성도(都城圖),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등이 실려 있다.
 이렇게 제작된 목판지도에는 축척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으나, 좌표에 방안(方眼)을 그리고, `매방십리(每方十里)’라 표시해 사실상 축척이 표시된 셈이며, 읍과 읍 사이의 도로에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해 거리의 축척을 알기 쉽도록 했다.
 서문의 성격을 지닌 “지도유설”에는 지도제작의 경위와 지도의 중요성, 지도의 도법, 지도의 실용가치 등에 대해 서술하였고, 전국 해안선 길이와 6대 간선도로의 총길이를 기록했다.  특히, “지도표”라는 독특한 범례를 고안해 다양한 내용을 간략한 부호로 표현했으며, 도로는 하천과 혼동될 우려가 있어 직선으로 표시했고, 10리 간격마다 표시함으로써 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축척의 기능도 겸하도록 했다.  지도 표현방법으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산도(山圖)를 그릴 때 산을 표현하는 방식을 응용해 개별 산봉우리를 그리지 않고 연결시켜 산줄기의 험난한 정도에 따라 산줄기의 굵기를 달리해 특정 산과 들을 강조하여 산세를 표현(산악투영법) 하는 등, 근대의 지도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밀·섬세한 지도를 조선시대에 제작했다.
 김정호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전국지도인 청구도 (1834, 조선 순조34년), ▲전국지리지 동여도지(東輿圖志 1834~1844 조선 헌종10년), ▲서울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 1840년대), ▲전국지리지 여도비지(輿圖備志, 1853~1856 조선 철종1년), ▲전국지도 동여도(東輿圖, 1857), ▲전국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861 조선 철종12년), ▲전국지리지 대동지지(大東地志, 1864 조선 고종1년)를 제작했다.
 이 외에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대한 자료들은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http://www.ngi.go.kr), ▲서울특별시 문화재 홈페이지(http://sca.visitseoul.net), ▲고산자 김정호 기념 사업회(http://gosanja.or.kr), ▲청도김씨 홈페이지(http://chongdokim.or.kr)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일제에 의해 잘못 알려진 김정호
 한편 대동여지도와 김정호에 대해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어독본`에서는 김정호는 전국을 세밀하게 표현한 대동여지도를 외적에게 팔려고 목판을 제작, 대원군이 지도를 제작한 죄를 물어 목판을 1867년 불태우고 옥에 가둔 후 고된 고문과 화병으로 인해 옥사했다, 또는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되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를 인용해 왔으나, 이것은 “일본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대원군과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비하·인멸하기 위해 발행한 것”이라는 것이 `조선어독본’을 제외한 사료(史料) 어느 곳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져 정부는 1997년 교과서내용을 개편, 왜곡된 사실을 모두 삭제하고 김정호의 삶 과 지리사상, 업적, 대동여지도의 과학·문화적 가치 등을 교과서에 담아 소개하고 있다.
 
 ▲김정호 후손, `청도 김씨’ 대 환영!!
 한편 국내 화폐로서 새로이 발행될 최고액권인 10만 원권에는 경북 청도가 본관인 청도김씨의 후손인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가 채택돼 대구·경산·청도, 경남 밀양지역의 청도김씨 5000여 가구의 후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도김씨(淸道金氏)는 우리나라 성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가락국 수로왕(駕洛國 首露王) 계통과 “신라 왕실의 박, 석, 김 3성 중 하나인 알지(閼智) 계통”으로 신라김씨, 즉 왕족 성씨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알지 계통은 서기65년(신라 탈해왕9)에 경주 시림(始林)의 나무 가지에 걸려있던 금궤에서 태어나 탈해왕이 `하늘에서 내려준 아들’이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金)으로 사성(賜姓)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시작된 김씨의 후손들은 신라의 56왕 중 38명이 왕계를 누리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름 있는 신하와 대유학자(大儒學者), 석학자(碩學者) 등을 배출시켰다.
 
 ▲청도김씨 가문의 유례
 청도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8세손, 즉 경순왕의 9세손인 영헌공 김지대(초휘 중용, 시호 영헌`英憲’, 1190~1266)이다.
 서기 1190년(고려19대 명종 20년)에 시중(종1품)을 지낸 수원김씨 김여흥의 3남으로 태어난 김지대는 고려 고종과 원종대의 명신으로서 1218년(고종5) 거란족이 쳐들어 왔을 때 29세의 나이로 출정해 충효쌍수라는 명시 `순두시’를 방패에 써 새기고 전투에 임했으며, 큰 공을 세우고 이듬해 2월 개선했다.
 1219년 5월 문과에 장원한 김지대는 ▲전주사록의 보임을 시작으로 ▲보문각교감, ▲진주목사, ▲전라도 안찰사(정3품, 고종27, 1240년), ▲비서소감(종4품, 고종30, 1243년)으로 몽고사신 임무수행, ▲경상도 안찰사(1247년), ▲판사재감사(정3품 1255년)로 과거시험의 동지공서를 역임, 1258년 북변에 몽고군이 침입하자 ▲첨서추밀원사(정3품, 북계지병마사 겸직)로 발탁, 몽고군을 격퇴하고 민심을 잘 다스려 서북 40여 성을 안정시켜 ▲추밀원부사와 ▲동지추밀원사를 한달 사이에 연속 승진한 후, 고종 45년 69세에 오산(청도의 옛 지명) 군(君)으로 책봉 되면서 나라에서 본관을 하사받아 수원김씨에서 청도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사관(賜貫)받은 땅 청도 상리(한재)에 만년유택(萬年幽宅)을 잡았다.
 원종이 즉위한 1260년 ▲정당문학(종2품), ▲이부상서, ▲금자광록대부,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1261년 원종 2년)까지 이르러 1266년 음력 2월 계사(癸巳)일에 향년 77세로 임종했다.  이때 나라에서 영헌공(英憲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청도김씨의 시조가 된 영헌공 김지대는 청렴결백한 청백리이며 공명정대하게 정사를 수행했던 재상으로서 고려시대의 명신(名臣)”으로 `정인지의 고려사, 김종서의 고려사절요, 서거정의 동국통감 등에 기록’되어있으며, 조선 성종 때 대학자인 서거정이 저술한 동문선(東文選)에도 영헌공의 시가 여러 편 실려 있을 정도로 문학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되어 고려시대 10대 시인에 꼽히고 있다.
 영헌공 김지대의 묘소는 사관 받은 땅 청도 유택인근인 “청도군 청도읍 상리 271번지”에 있으며, 이곳 `염수당’에서 후손들이 700여 년간 음력 10월6일 추향제(秋享祭)를 지내고 있으며, “경남 밀양 청도면 두곡리 366번지에 소재한 `남계서원’에서는 후손이 아닌 지역 유림”분들이 매년 음력 3월 첫 돼지일에 영헌공 김지대를 위한 춘향제(春享祭)를 모셔주고 있다.
 
 ▲청도김씨의 후손
 청도김씨 시조 영헌공 김지대의 후손인 아들 ▲김선장(2세)은 대호군(종3품, 일등공신, 충혜왕복위1년, 1340년)을 역임 했으며, ▲원정공 김한귀(6세) 동경도 병마사(일등공신, 공민왕11, 1362년), ▲김한룡(6세) 판전교시사(정3품 공민왕), ▲김린(7세) 국자진사, 봉상대부, 중서사인, 지제고 역임(공민왕9년~) ▲김희(7세) 장원급제(공민왕 9년), ▲김의 행수관 역임(고려 충렬왕), ▲호강공 김점(8세) 형조·호조판서(조선조 세종), ▲김흡(8세) 보문각 제학(세종), ▲김유손(9세) 절충장군, 나주목사(정3품 세종), ▲김의손(9세) 예조참판(성종) ▲김경손(9세) 중위사정(정7품, 세조). 후일 양녕대군 과 사돈 맺음, ▲김호우(10세) 전라도관찰사, 병마절도사(종2품 성종), ▲김희우(10세) 영능참봉(종9품, 세종대왕 동서지간), ▲김영우(10세) 선공감정(정3품, 연산군), 첨지중추부사(정3품, 중종), ▲김생수(11세) 선공감부정(종3품), ▲김봉상(12세) 성균관진사, 영능참봉(종9품), ▲김난상(12세) 중종 때 문과급제, 선조 때 대사성, 대사간(정3품), ▲김요산(14세) 울산부사(선조), ▲김의산(14세) 충청좌병사(선조), ▲김우(16세) 병조판서(정2품), 보국숭록대부(정1품, 연산군), ▲김몽룡, 김희방 임진왜란 공신, ▲조선의사 김준신 임진왜란 최 초 의병장, 경북 상주전투에서 전사, 통훈대부사헌부집의(정3품, 순조19년), ▲금포 김시성 익찬(인조15 1637년), 용천부사, 강계부사, 어영중군, 통제사 역임, ▲정수재 김응하(1783~1830) 성리학자로서 정수재유고 집필(순조), ▲고산자 김정호 학자로서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을 목판으로 제작,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김익동 성리학자로서 고종 때 석학, 직재집, 반구록, 상제의집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회생시킨 효심을 기려 정려(旌閭)가 세워진 `김성민, 등, 조선시대 과거에 86명(문과 6명, 무과 23명, 사마시 55명, 역과 1명, 의과 1명)이 급제하는 등 충·효사상이 높은 명문대가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강점기 때는 ▲김태인, ▲김태현, ▲김외득 3인 은 1919년 국내의 유림이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에 서명하는 등 일제에 항거 조국광복을 위해 앞장선 선조들이 있었으며, 정권수립 이 후 ▲김석규 前 파라과이, 이탈리아, 러시아, 2000년 일본 대사, ▲김영찬, 김동휘 前 상공부장관, ▲김수학, 김재영 前 국회의원, ▲김영 前 부산 MBC사장, ▲김영희 前 경북대학교 총장, ▲現 군 장성, 지원장, 차관, 지자체 시장, 의원 등, 정계, 법조계, 학계, 의료계, 교육계, 연구소, 경제계, 금융계, 언론계, 인간문화재, 연예계 등지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어 청도김씨가 명문가로 현시대까지도 빛나고 있다.
 현재 대종손은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김성원(37세)씨 이며, 시조 김지대로 부터 20세손인 김충신씨가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 정착하면서 `하양남하파’로 분파해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2004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우리나라의 성씨는 286개 성씨(귀화인 제외)이고 본관 수는 4천179개이며, 전체 1432만6224가구에 총인구는 약 4600만명 중 “청도김씨는 대구 3000여 가구, 경산 700여 가구, 청도 300여 가구, 밀양 청도읍 600여 가구 등, 전국 2만3675가구에 7만5567명으로 본관별 인구 순위 100위로 나타났으며, 남·북을 하치면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편, 한말 민족의 한을 아름다운 시 로 노래한 김소월(김정식)의 가문인 공주김씨 또한 청도김씨 시조 영헌공 김지대의 9세손인 김의손(예조판서)이 시조이다.
  경산/김찬규기자 kck@